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테란트 공화국/외교 (문단 편집) === [[서부공화국연방]]과의 관계 === [[서부공화국연방]]은 독립전쟁 당시 대규모 군사원조 및 의용군 파병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하여 종전 이후 작중 배경이 되는 세계대전 개전 직전까지 혈맹관계로 이어져 있던, 미테란트 공화국 유일의 동맹국이었다. 특히 의용군 파병은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지휘권까지 미테란트 공화국에 위임한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런 예는 우리 세계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데, 특히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국가에 강대국이 자신의 군 지휘권을 양도하는 일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것도 군사경험이 사실상 전무한 나라(…)에게는 더더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주요 작전지휘권이 미군에게 있었던 예는 있지만, 이것은 많은 병력과 더불어 사실상 연합국 전체의 군수공장 노릇을 했던 나라에 대한 당연한 예우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 대한 배경은 아직 공개된 바가 없다가, 작가 본인이 지금 엔젤하이로 위키에 처음 공개했다. (…) 일단 독립전쟁 참전 배경은 [[윤민혁|작가]]의 설정에 따르면 순망치한이다. 즉 외국이 자신들의 혁명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직접 침공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당장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독립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가능한 한 국력을 많이 소진케 하려는 의도인 셈. 여기에 아래의 세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1. 장차 미테란트 공화국 - 당시에는 아직 정부수립 이전이므로, 일단은 미테란트 임시정부 - 이 [[서부공화국연방]]의 속국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독립전쟁 수행의 주도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갓 혁명을 마친 [[서부공화국연방]]의 병력지원에 대해 그 지휘권의 일방적 양도를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자칫하면 미테란트 공화국 독립의 조기 무산에 이은 [[서부공화국연방]]판 [[적백내전]]이 발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벼랑끝 외교를 하고 있는 장차의 동맹국 후보에게 크게 양보했다. 서부공화국연방은 국토가 매우 넓으며, 비슷한 시기 전 세계를 뒤흔든 공산혁명을 가장 신속하게 진압한 [[대 에린 섬과 결속국가 연합왕국|연합왕국]]의 가맹국들에게 지리적으로 포위된 꼴이어서[* 1919년 시점의 러시아 국경선 주변을 보라. 영일동맹과 영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일본에게 사실상 포위돼 있다. 서부공화국연방은 그나마 러시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일본이 아예 연합왕국 구성국인 상황이다.], 연합왕국이 혁명 저지를 위해 실제로 군사력을 동원할 경우 자칫하면 구성 공화국 중 일부가 혁명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2. 또한 [[서부공화국연방]]은 건국 직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 이념에 비교적 충실한 국가여서, 약소국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미테란트 공화국이 군사적 경험 자체는 일천해도 지휘능력만큼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서 그런 배려를 해도 괜찮으리라는 판단을 세울 수 있었다. 사실은 [[서부공화국연방]]의 구 군사중추가 대부분 혁명 과정에서 타도되는 바람에 스스로 지휘권을 행사하고 싶어도 대군을 지휘할 충분한 실적이 없기도 했다. 특히 [[서부공화국연방]]의 전신인 [[에쉬르 제국]]은 원래 육군국이었음에도 제국 말기에 지나치게 해군 위주로 국력을 재편했던 탓에 육군의 구조적 약화가 심각했고 해군 역시 충분히 강력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대군을 편성, 유지, 운영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소멸해 있다시피 했다. 혁명이 조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문제 때문. 3. 덤으로 미테란트는 군사적으로는 아직 취약해도 잠재력은 충분히 있고, 경제적으로는 독립선언 순간부터 절대 무시 불가능한 강대국이었으므로[* 독립 전부터 축적된 경제력 규모가 장난이 아니어서, 당시 세계가 보유한 통화로서의 금 보유량의 약 1/3 정도인 약 1만 톤이 미테란트 공화국 영내에 있었고, 5개주가 주변국에게 점령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이 보유하고 있던 금이 모두 점령되지 않은 4개 주에 옮겨졌다는 설정이 있다.], 미테란트 측은 군의 지휘권을 미테란트 임시정부에 넘길 경우 독립 후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서부공화국연방]]에 제공하겠다는 떡밥을 던졌고 여기에 [[서부공화국연방]]이 마지막으로 결심을 다졌다. 즉, [[서부공화국연방]]군은 일종의 용병으로서 참전한 셈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서부공화국연방]]은 미테란트 독립군에 일차로 약 5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해서 독립을 직접 지원했고, 이 정도의 투입 병력 규모는 개전 1년차부터 종전 때까지 6년에 걸쳐 계속됐다. 연인원으로 계산하면 약 200만에서 300만 정도가 참전한 셈. 이런 병력지원이 없었다면 미테란트 공화국은 건국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구 제국 육군의 잉여 병기류, 특히 [[서부공화국연방]]의 군용 제식총기가 대규모로 원조 또는 판매되었으며, 이것이 미테란트 독립군의 전투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것도 사실이다. [*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나라든 임시정부 하에 조직화돼 있는 독립군이 정규전에서 보이는 최대의 약점 중 하나는 통일되지 못한 무장과 이로 인한 병참의 난맥이다.] 이렇게 해서 미테란트 공화국이 독립한 후 [[서부공화국연방]]과 미테란트 공화국은 절대적인 혈맹관계가 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서부공화국연방]] 의용군 남자 2~300만 명이 미테란트 공화국에 뿌리고 온 씨(…)가 적지 않게 작용했는데, 사실 인구 4천만의 미테란트 공화국에 인구비례로 볼 때 남자가 120~150만 남짓한 규모일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미테란트 공화국의 20대 청년층 중 절반 이상은 서부연방에 아버지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하여튼 이렇게 성립된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두 나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사이가 좋았다. 특히 [[서부공화국연방]]은 공산국가라는 특성상 대부분의 외국과 외교관계 자체를 맺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수교국 자체가 미테란트 공화국밖에 없었던 시기조차 있고, 제국 말기의 해군력 건설 문제로 혼란에 빠진 경제를 재건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미테란트 공화국의 경제지원 및 노하우 전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나라의 혈맹관계는 쉽사리 붕괴되기 어려우리라 보였다. 그러나 [[스볘뜰라나 스딸리노바]]가 국가원수가 되면서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둘도 없는 혈맹국 사이였음에도 [[스볘뜰라나 스딸리노바|스딸리노바]] 집권 후 몇 년 되지도 않은 시점인 1권에서부터 아예 개전이 전 국민 차원에서 기정사실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은 묘사[*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미욘 안드레예비치 비노그라도프|누군가(…)]]에 대한 [[밀레비아 크리스티안|누군가의(…)]] 발언을 참고하라.]가 나와 버릴 정도. 일이 이렇게까지 꼬인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 작중에 언급된 바 없고, 작가 역시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서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적어도 [[스볘뜰라나 스딸리노바|노처녀]] 히스테리 또는 [[얀데레]]질은 아니라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